은밀히 진행되는 중절수술
안녕하세요 미프진 코리아 약사 김희진 입니다.
중절수술 은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던 주제이기에 우리가 참고할 만한 외국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례는 ‘루마니아’입니다.
루마니아는 1966년 <디크리 770>(Decree 770)이라고 불리는 임신중절 금지법을 시행했습니다. 이 법은 강간, 근친상간을 통한 임신과 산모의 생명을 위협하는 임신, 이미 아이가 4명 있거나 산모의 나이가 45살 이상인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절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디크리 770은 1989년 12월 루마니아 혁명으로 폐기될 때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째는 출생률의 변화입니다. 디크리 770이 시행되고 첫 4년 동안 인구 1천명당 태어나는 신생아 수를 의미하는 ‘조출생률’이 14명에서 21명으로 급격히 늘었습니다. 동시에 보육원 등 시설에 맡겨지는 아이의 수도 늘었습니다. 원치 않은 아이를 낳았지만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열악한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은 영양결핍에 노출됐고, 유아사망률의 증가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일부는 의사에게 뇌물을 주고 임신중절을 했고, 저소득층 여성들은 위험한 임시중절 방법을 택했습니다. 잠깐 늘었던 조출생률은 1970년부터 다시 감소했고, 1985년에는 법 시행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둘째는 모성사망비(임신 중이거나 출산 이후 7주 이내 사망하는 여성의 숫자)의 급증입니다. 의사로부터 안전한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된 여성들이 불법 시술을 시도했고, 이로 인해 많은 합병증을 앓으면서 매년 500여명이 감염으로 사망했습니다. 임신중절법 시행 이전인 1966년에 비해 1983년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는 7배 높아졌고, 1989년 기준 주변국인 불가리아나 체코보다 모성사망비는 9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1989년 임신중절 금지법이 폐기된 다음 해 루마니아의 모성 사망비는 다시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피임은 미국에서 1972년까지 불법이었습니다. 콘돔은 1838년 개발됐지만, 미국 정부는 1873년 콤스톡 법(Comestock Act)을 통과시켜 피임에 대한 정보유통과 광고를 막았죠. 저항이 커지자, 연방대법원은 1865년 부부 사이에서만 피임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후 1972년에야 피임이 전면 허가됐습니다.
피임 금지는 사회 불평등을 고착화했습니다. 국가가 피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동안, 사실상 백인들과 상류층 사람들은 피임법을 숙지하고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암암리에 피임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피임법을 몰랐던 유색인종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원치 않는 임신도 받아들였습니다. 피임 정보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가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임신중절 수술은 어떨까요? 보건복지부의 ‘마지막’ 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학력이 낮을수록 중절수술 률이 높았습니다. 월 소득 300만∼500만원 사이 가임기 여성의 임신중절 비율이 37.5%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200만원 이하 저소득자(29.7%)가 이었습니다.
“현행법으로 임신중절을 규제한다고 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수가 줄어들 리 없고, 결국 법을 우회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임신 중절수술 이 과거보다 더 높은 비용으로 은밀히 진행되면 많은 여성이 인터넷에 떠도는 위험한 방법에 의존하게 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한국에서 임신중절 비용을 낼 수 없고, 수술을 위해 외국으로 나갈 수 없는 저소득층 여성이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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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후기는 거짓이 아닌걸 말씀 드리고 싶고 혹시 이 후기를 보고 저랑 비슷하게 힘들어하실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싶어서 후기를 남겨요 저는 18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질내사정을 하지 않고 관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생리날짜가 늦어지는 편이 아닌데도 8일이라는 시간동안 생리할꺼같은느낌이 들지않아 불안한 마음에 임테기를 해보았는데 진한 두줄이 나오더라구요..진짜 절망적이였고 당장이라도 죽어야된다는 생각에 손이 벌벌 떨리고 숨도 쉬지 못하고 울었어요 정말 꿈이겠지 이 테스트가 오류겠지 하는 생각에 임테기를 하나 더 구입해서 해봤는데 역시 또 두줄이더라구요..앞날이 막막했고 남자친구랑 친구들이 와서 위로해주고 낙태하는 방법을 찾던 도중에 미프진을 알게 되어 일단 산부인과고 뭐고 남자친구랑 저랑 돈을 구하면서 중간에 산부인과를 갔더니 3주에서 4주넘어가는중이라면서 어린나이라 그래서 인지 수술을 해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하지만 수술은 부모님 동의가 필요해서 할생각을 하지 못하고 미프진약을 살 생각으로 돈을 모았고 2주만에 약을 샀어요 임신한지 5~6주가 된 상황이였고 전 4주부터 입덧이 너무 심해서 음식도 잘 먹지못하고 빈혈이나 우울증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빨리 약을 먹고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산지 3일정도되서 약이 도착했고 토,일 이렇게 2일동안 먹었습니다 약을 먹자마자 아플까봐 많이 걱정이되서 약먹는게 많이 두려웠는데 1일째는 평소같아서 설마 약효가 없는건 아니겠지?하는 생각에 많이 무서웠는데 대부분에 후기에서 1일째는 아프지않고 출혈도 잘 없다는 경우가 많다해서 최대한 편안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리고 2일째 되던날 진통제를 복용하고 30분 후에 자궁수축제 4알을 복용했어요 친구집에서 복용을 했기때문에 약을 먹고 약 2시간뒤에는 나가야되는 상황이라 약효가 빨리 나타났다가 금방 좋아지길 빌었는데 진짜 약을 먹고 10분만에 극 심한 통증이 시작되면서 배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진짜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지만 1시간후에 살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나갈 준비를하고 소변을 보러 화장실을 갔는데 붙여놓은 생리대에 핏덩이가 크게 두덩이 정도 나와있고 피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배가 크게 아프진않았어요 급하게 집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네집에서 일단 나왔고 5분정도 떨어진 정자로 가서 친구와 남자친구랑 같이 진행이 잘된거같고 유산이 잘 끝난거같다고 말하고 있던때 갑자기 처음에 있던 통증에 2배로 크게 통증이 시작됐고 최대한 사람이 외진곳으로 가서 진짜 신음소리 내면서 괜찮아져서 먹었던 간식을도 전부다 토하고 배를 움켜잡으면서 이러다간 내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아팠고 갑자기 똥배처럼 아프기시작해서 급하게 근처 공중화장실에 들렸더니 설사를 하더라구요 근데 제가 임신 이 후에 변비가 많이 심해지긴 했어서 그랬다 생각하고 변을 다 보고 자궁배가 너무 아파서 멍 때리는 와중 몸에서 크고 긴 핏덩이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변기통에 빠지는소리가 들려서 변기통을 봤더니 완전히 피바다가 되있더라구요..근데 핏덩이가 나온 이후로 배가 많이 좋아져서 어느정도 걸을수 있었고 집에 걸어가는 와중 생리대를 찼음에도 바지가 다 젖을정도로 피가 쏟아져서 급하게 집에 갔어요 집에 간 이후로는 피양은 많았지만 통증은 심하지않고 딱 생리통 정도라서 버틸 수 있는거 같아요 미프진을 먹는 분들에게 말해드리고싶은건
1.아플때 꼭 지인(남자친구나친구가족)아무나 좋으니 꼭 한명이라도 옆에 두셨음 좋겠어요 진짜 혼자 버텄다면 전 못 버텼을꺼같아요
2.따뜻한 수건이나 손수건 준비하세요
3.약을 먹기전 꼭 진통제를 준비하시거나 드세요 먹어도 죽을꺼같으니까 꼭 꼭 드세요
4.전 그러지 못 했지만 모텔이든 집에서 진행을 하세요..전 우습게 보고 밖에 있다가 죽을뻔했어요ㅠㅠ
어린나이에 새 삶을 살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 꼭 계획되지않은 임신이라면 피임을 할 생각이에요 너무 감사드려요 저처럼 어린나이분들도 이 후기를 보고 희망 잃지 마시고 약을 복용하시는걸 추천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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